2018 STANDARD SIZED

꽤 오랜 시간 나는 작은 공간 안에서 지냈다. 청소와 요리와 빨래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거나 글을 읽기도 하고, 영화를 보거나, 끊임없는 생각을 하다보면 이 공간의 외곽은 한없이 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매우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이 작은 공간안에서 나를 규정했고,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 더 작아져야만 했고, 심지어 그 안에서 나의 주체가 게다가 몇 개로 분리되어 수없이 많은 역할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끔씩 밖으로 나가기라도 하면, 미칠듯이 에너지를 소비하거나 혹은 에너지를 얻어서 다시 들어오기도 했고 그 에너지가 상상력이 되어 나의 작업과 일상을 이끌어 갔다. 산의 경사면에 위치한 나의 작업실은 전면은 2층, 후면은 반지하인 공간이다. 산과 연결되는 부분에 작은 창이 있고, 환풍구가 있는데, 어느 날, 작업실의 고양이가 환풍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 뒷산을 헤매다가 바로 발견되어 다시 작업실로 들어왔다. 그날 이후 다시는 고양이가 위험하게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도록 환풍구의 외부와 내부를 안전하게 차단하였고, 환기에는 문제가 없도록 세심하게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나의 고양이는 그날 이후 환풍구 앞에서 항상 밖을 바라보며, 그 곳을 통해 다시 한번 나가고 싶은 듯, 가끔 “야옹” 울기도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해, 너도 그렇잖아. 잘 돌봐 줄거야, 배불리 먹여주고, 깨끗하게 해주고, 재미있게 놀아주고, 쓰다듬고 안아주면서, 아프지 않게 잘 보살펴 줄께.. 그렇지만, 우리 고양이는 어쩐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네가 밖으로 나가버리면 너는 행복할까. 네가 그곳을 통해 또다시 나가버린다면, 다시 그 출구를 찾아서 돌아올 수 있겠니.? 해메다가 몸서리치도록 나를 그리워하고 후회하겠지만, 우리는 끝내 만날 수 없을지도 몰라.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생활의 스펙트럼이 크지는 않지만, 쉴 새 없이 일이 주어지고,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분주하게 한걸음 한걸음씩,어느 날, 큰 무엇이 천천히, 그렇지만 갑작스럽게 나의 위를 굴러갔거나, 아직도 굴러가고 있다. 그것의 지름은 그 동안 잊고 지냈던 고통과 괴로움의 무게만큼 긴 것이어서 계속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지나갈 것인지 나도 모른다. 이상한 것은 내가 그것이 사라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내 위를 이렇게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내 두발로 걸어 들어온 작은 공간 안에서는 도무지 가늠해 보지 못한, 범위를 벗어나는 그 고통 크기가 더 크거나, 아니면 그 ‘공과 같은’ 무엇의 둘레가 내 고통보다 더 크고 길거나 아니면 계속 무한정 순환하는 것이어서 언젠가 또 다시 내 위를 굴러가면 좋겠다. 무겁고 힘들고 아프지만 그 존재로 인해 나는 스스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여기서 나의 공간은 물리적인 것도 포함하지만 대개 심리적으로 내가 만들어 낸 많은 규칙과 정의에 의지한다. 어떤 생각을 할 때, 의지를 갖게 될 때, 그리고 표현을 할 때, 먹거나, 자거나, 계획을 세우는 모든 순간에 나는 내게 허락된 범위에 어긋나지 않는 적절한 수치를 계산한다. 게다가 또 다른 주체가 되어버린 나 자신과 논의하고 싸우거나, 타협한다. 이렇게 규격화된 틀은 깨고 나가기 어렵지만, 그 자체로 나를 보호해 주기도 한다. 잘게 잘게 쪼개져 분리된 나 자신 중 하나가 커다란 공과 같은 그 무엇의 존재를 버티는 과정에서 불균형하게 커져버렸고, 그 동안 공간을 공유했던 모든 것들과 헤어짐을 시도하고 있다. 끊임없이 확산되거나, 위축되는 어떤 욕망과 감정들이 그 안에서 또는 그 밖으로 소멸되고 펼쳐나가면서, 비록 무엇을 향해 가는지 알 수가 없지만, 어떤 존재 하나가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나를 부추긴다. 더불어 붙잡는다. 나는 어느 순간에 멈추어 있지만, 끊임없이 향해서 가고 있기도 하는 것 같다.
얼마 전 , 전지 사이즈의 에칭 프레스를 갖게 되었다.그 동안 30x40cm 의 동판이 겨우 들어갈만한 에칭 프레스로 십 여년 동안 판화 작업을 지속해 왔던 나에게 “판”의 크기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는 것은 큰 변화였다. 훌륭한 도구를 손에 쥔 그 순간, 나는 그 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크기의 한계에 대해 더욱 절실하게 실감하게 되었고, 내가 가진 그것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치의 효율을 생산해 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되었다. 편리한 여건을 갖추기 위해, 소통 가능한 언어를 구사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 던가. 또 그 모든 것을 얻게 된 순간, 과연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 는가.
질문은 던지지만 정답은 없다. 그러나 알수 있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내가 스스로 규정한 평면적인 프레임의 차원을 넘어서 자유를 부여하는 환기구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 아직은 미숙하지만, 결국은 고통스럽고 좌절할지도 모르지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그 커다란 공과도 같은 무거운 존재의 실체를 언젠가는 알게 될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