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을 통한 기호적 상징체계 : 신소영, 표갤러리 큐레이터

반복을 통한 기호적 상징체계

인과관계의 실재 여부와는 관계없이 우리 일상의 대부분은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양상이 얽혀있는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육하원칙으로 구성된 소설을 읽듯이 형식적으로 우리의 삶을 이해하려는 성향을 지닌다.

작가 김미로는 이러한 일상의 삶 속에서 겪어야 하는 감정적 괴리와 모호함 들을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동물과 식물의 형상 속에 투영시키는 작업으로 관객의 공감을 유도해내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에칭과 석판화의 기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동물과 식물의 이미지를 얇은 한지에 찍고, 또 다른 판을 겹쳐 찍어 나가는 반복과 겹침의 조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판화 기법에 의해 겹쳐진 이미지들 속에서 다시 개개의 동식물의 형상들을 오려내고 화면에 시각적으로 배열하여 조합하는 꼴라쥬 방식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화면을 형성해 나간다. 이는 마치 일상생활의 경험에서 오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형상들에 이입하여 마치 언어로 표현된 하나의 문장체계를 생성하는 해체와 재조합의 과정과 닮아있다. 이 과정에서 작가 개인의 반복적 경험에서 축적된 다양한 감정들이 갖가지의 중첩된 동식물의 형상으로 상징되고, 은유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동물과 식물의 포즈, 무늬, 배경들은 작가를 둘러싼 상황에서 오는 주관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심리적인 나’로 표상된다. <부푼 꼴라쥬>와 <위축된 꼴라쥬>에서 작가는 석판으로 고슴도치의 형상을 여러 장을 찍은 후 가시들을 오려내어 하나는 화면으로 확장시키고, 다른 하나는 화면에서 고슴도치를 향해 수축시켜나가는 표현 방식을 통해 고슴도치로 비유된 작가 자신의 기대에 부풀고, 위축됨을 반복하는 심리 상태를 반영해나간다. 한편, <강아지-패턴 오려 붙이기>에서 웅크려 있는 포즈의 얼룩 강아지는 정체되어있는 작가 자신에 대한 억압 또는 구속의 주체로 설정되었다. 하지만 작가는 강아지의특징적인 형상패턴인 얼룩무늬를 추출하고, 그것들을 재차 화면 위에 재배열하는 표현방식을 통해 그 이면에 내재된 자유를 향한 갈망과 욕구를 드러내는 요소로 등장시키고 있다. 사물의 전체적이거나, 혹은 부분적인 이미지를 빌어 자아를 드러내는 이미지를 보면서 관객들은 자기의 구속과 그로 인한 절망을 발견하기 보다는 형상 속에 숨겨진 욕망의 에너지, 탈출구를 찾고자 하는 본능의 위력을 느끼게 된다. 작가의 작업은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하고 관객 자신을 억압하는 것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관객에게 작가의 경험에 대한 이해가 아닌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자기화를 유도해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작업에서 작가는 동물의 패턴이나 특징적인 이미지 등 대상의 좀 더 세밀하고 미시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새로운 의미관계를 제시해 나가고 있다. 작가 김미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소통방식으로서 예전 작품보다 더욱 확장된 기호적 상징체계를 제시해 나가며 확고한 조형세계를 구축해 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렇듯 창의적인 상징과 은유의 방식으로 사물의 패턴과 형태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가 특유의 조형적 실험을 감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신소영 (큐레이터, 표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