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의 판화

지금 여기의 판화 (김미로)

김미로

2014. 7 63 스카이아트 미술관 PRINTMAKING 전시서문

우리는 “판화”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어린 시절 세모칼을 가지고 감자를 깎아서 꽃무늬나 하트 무늬를 새기고 그림물감으로 반복해서 찍어보았던, 그 촉촉하고 서걱서걱한 감자 도장의 느낌을 추억으로 연상하게 된다. 또는 미술 시간에 서툰 솜씨로 질긴 고무판을 파다가 손을 다친 이후 더 이상 판화라면 찍고 싶지 않았던 경험을 떠 올릴 수도 있다. 그렇게 십 수년이 흘러 어느 미술관에서 접한 판화 작품이 내가 경험했던 판화와는 너무도 달라, ‘판화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판화는 말 그대로 ‘판을 찍어서 만든 그림’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수없이 많은 ‘찍어내는 그림’들이 우리의 삶과 함께 하고 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던가, 아이와 함께 모양 쿠키를 구울 때, 글을 쓰다가 책상 위에 잠깐 엎드려 자고 난 후 이마와 볼에 생겨난 손자국 등에서 일상 생활에서 생겨난 판화를 만날 수 있다. 첩보 영화 속에 나오는 탐정이 범인의 지문을 채취하고, 발자국을 따라가며 사건을 유추하는 과정은 찍힌 흔적을 통해 결과물을 찾아내는 판화의 과정과도 흡사하다.

찍는다는 간접 표현은 애초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조형 본능의 일부이다. 따라서 찍고, 흔적을 남기고 그 결과를 취하는 판화의 기본적인 원리와 기법은 인간의 종교, 도구, 문화의 역사와 보조를 맞추어 발전해왔다.

최초로 발견되는 판화의 형태는 목판을 통해서 나타났다. 목판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나무에 이미지를 새기고 돌출된 부분을 종이나 천에 찍어내는 방법인데, 볼록하게 돋아 있는 부분을 찍기 때문에 볼록판화(relief)로 분류한다. 목판은 종이의 발명과 함께 인쇄를 가능하게 했고, 종교의 전래와 사상의 진보에 큰 영향을 주었다. 불교 경전의 내용을 보급하기 위한 목판 기법이 본격적으로 생겨난 것은 중국의 금강경과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을 토대로 9세기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불국사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8세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동양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전해진 목판 기술은,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적 분위기에 따라 역시 종교의 이미지를 전파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글을 읽지 못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쉽고 명확한 그림으로 표현된 목판화를 통해 성서의 내용을 이해하고, 신앙심을 채워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목판화는 성서의 삽화나 부적뿐만 아니라 놀이용 카드 등으로도 제작되었으며, 예술가들도 회화 작업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서 목판화 기법을 이용하였다.

금속은 나무에 비해 단단하고, 녹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금속의 성질을 이용하여 구리나 아연으로 만들어진 판 위에 직접 그림을 새기거나, 용액에 부식하여 정밀하고 섬세한 선과 미세한 점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매끈한 금속 판의 표면 안쪽으로 새겨진 세밀하게 파인 홈에 들어간 잉크를 강한 압력으로 찍어내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 기법을 오목판화(intaglio)라고도 한다. 오목판화는 동판을 주 판재로 사용하며, 표면에 오목한 홈을 만드는 방법에 따라 에칭(etching), 아쿼틴트(aquatint), 드라이포인트(drypoint), 메조틴트(mezzotint) 등의 기법으로 세분화하여 부르기도 한다. 동판화는 15세기 독일에서 금속 세공사들이 갑옷이나 칼 손잡이, 귀금속 등에 문양을 새겨 넣는 기법을 응용하면서 시작되었고, 목판화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거나, 놀이용 카드를 제작하는데 사용되었다.

석판화는 석회석 표면에 침투된 기름기에 몇 가지 화학적 처리 과정을 거쳐 물과 기름의 반발을 유도해 이미지를 얻어내는 판화의 방법이다. 평면 위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긴장과 반발 상태를 찍기 때문에 평판화(planography)로 분류되는 이 기법은 18세기 말 독일의 가난한 배우이자 극작가로 활동하던 제네펠더(Aloys Senefelder)가 고안하였다. 대본 인쇄비를 절약하기 위해 직접 동판 부식을 시도하던 그는 우연히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잉크대에서 일어나는 표면 효과를 보고 석판화의 실마리를 얻었다. 다공질의 석회석 위에서 기름기가 있는 부분은 잉크를 받아들이고, 물을 바른 부분은 잉크를 배척한다는 원리를 토대로 집요한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여 석판 기법을 정리하고 기록하였다. 유동적이고 다양한 드로잉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석판화는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회화적인 느낌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큰 호응을 얻었고, 당시 유럽의 사회적인 분위기에 맞게 신문이나, 잡지의 캐리커쳐, 또는 광고 포스터 등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원시인들은 동굴의 벽면에 자신의 손을 대고, 입으로 흙을 불어서 손의 이미지를 벽화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무언가로 차단된 나머지 부분에 안료나 잉크를 뿌리거나 밀어 넣어서 나타내는 표현 방법을 공판(stencil)이라고 한다. 매우 간단한 원리인 이 공판 기법은 예로부터 장식적인 도안과 패턴, 또는 자연물의 형태를 천이나 벽에 옮겨 표현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스텐실의 형상은 뚫려 있어야 하므로 뚫려있는 안쪽 부분까지 복잡한 이미지를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이와 같은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실크 천으로 망을 만들어 스텐실의 안쪽 부분에 복합적인 이미지까지 고정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 바로 실크스크린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판화는 애초에 복제를 위한 기술적 도구로서 시작되었고 발전해왔다. 그 기술은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나 이미지를 목적에 맞게 여러 개, 또는 수없이 많이 생산해 낼 수 있는 것이었으며, ‘판’을 만든다는 것은 지식의 원천이자 소통의 형식을 생산하는 프로그램을 짜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산업 혁명 이후 19세기 중반 등장한 사진술은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를 판화보다도 훨씬 정확하고 쉽고 경제적으로 복제할 수 있었다. 판화는 더 이상 무언가를 복제할 이유가 없어졌다. 예술가들은 ‘여러 개의 이미지’라는 판화의 결과보다는, ‘판을 만들고 찍는다’는 판화의 과정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예술가들은 나무, 돌, 금속, 천이라는 판재의 물리적 성질에서 영감을 얻어 이미지를 구상하였다. 그리고 준비된 판을 깎고, 부식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구멍을 뚫는 수공적인 노동에 기꺼이 참여하였다. 즉, 제판과 인쇄의 각 단계마다 자신들의 회화적, 조각적, 디자인적 상상력을 자유롭게 결합하여 예술 작품으로서의 판화를 만들어 냈다.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은 전쟁 후 인간의 본성과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매체로 목판을 선택하였고 나무의 거친 질감과 흑백의 극명한 대비를 구현하기 위해 직접 조각칼을 들고 목판을 깎았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팝 아티스트 작가들은 대중 문화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실크스크린으로 표현하여, 붓 자국 없이 납작한 원색의 표면을 반복적으로 찍어낼 수 있었다. 작가들의 상상력을 만나 비로소 판화의 각 과정은 예술적인 고유성을 지닌 자기만의 목소리를 갖게 된 것이다.

판화가 회화와 동등한 예술 창작의 결과물로 받아들여지게 되면서, 무한정 찍어내던 판화에도 한정 찍기(edition)라는 개념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현대 판화는 특정한 원본을 복제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여러 개로 존재하는 복수의 예술 작품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리지널 판화(original print)’와 ‘복제 판화(reproduction)’를 혼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둘은 전혀 다른 것이다. 오리지널 판화란, 판화 작가가 이미지의 구상부터 판의 선택, 판 만들기, 인쇄의 모든 단계에서 자신의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동원하여 제작된 판화 작품을 말한다. 그러나, 복제 판화는 이미 기존의 창작물로 존재하는 다른 작품을 판화 기법으로 재 생산한 것이다.

판화의 고유한 매력과 매체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시도하려는 예술가들에게 기술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공방도 생겨났다. 공방 기술자들은 예술가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구현해낼 수 있도록 판을 선택하고 만들고 찍는 방법 등을 제안하였을 뿐 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재료를 개발하여 판화에 응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렇듯 판화에서 행해지는 공방과 예술가의 협업 과정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개인의 작업실에 고립되지 않고, 현대 산업의 다양한 분야와 소통하고 반응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판화는 당대 첨단의 기술을 수용하고 사회 문화적 이슈를 매체의 속성으로 반영하면서 성장해 왔다. 동시대의 판화 작가들 역시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 환경에 대한 관심사 등을 재료의 선택과 작업 과정의 일부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시 이야기의 시작으로 돌아가보면, 우리가 판화에 대해 경험한 것 중 기억으로 남아있는 부분은 판의 제작 과정이다. 그 기억이 판과의 교감이었을 수도 있고, 충돌이었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작가들도 판과의 교감과 충돌을 끊임없이 겪으면서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보여지는 결과물인 한 장의 완성된 판화는 판을 제작하는 ‘과정’이라는 전제 조건을 언제나 포함하고 있다. 판과의 접촉이 없이 판화란 완성될 수가 없다. 지금 우리 눈 앞에 있는 판화 작품은 판과 접촉했던 생각과 노동의 흔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판화는 매우 정직한 예술이다. 이제 판화 앞에서는 어렵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처음 판화를 경험했던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좋겠다. 판을 앞에 두고 두근거리는 설렘, 판의 물리적 저항과 원치 않는 변수에 대한 인내와 고민, 그리고 만들어 진 판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찍은 후 살짝 들어보는 그 순간의 흥분과 긴장을 헤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지금 여기의 판화를 통해 작가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비로소 그 결과물인 판화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준 훌륭한 감상자가 되어,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Print Making 웹사이트(63 스카이아트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