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eiosis 기호화와 반복 - 강태성,미술비평

Semeiosis 기호화와 반복


김미로는 강아지나 양, 말 등 다양한 동물을 동판과 석판으로 작업하고, 그 형상을 반복적으로 배치(열거)하거나 겹쳐 낸다. 이 때 나타나는 동물은 전통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보다는 작가의 주관적인 정서가 이입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심심한 강아지>에서 강아지가 아주 평면적으로 조각난 형태처럼 가만히 엎드려 있거나 앉아있는 무료한 포즈로 제시된다. 이 두 형태는 다시 두 개씩 반복되어 실재로 강아지를 통해서 무료한 의미를 느끼게 한다. 또한 작가는 작품 <자유의 쥐>에서 108개의 화면에 네 측면을 타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쥐에서 판에 박힌 현실, 막힌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의 의미를 보여준다. 여기서 작가는 몇 가지의 기본적인 형태를 판화로 찍었고, 이 같은 형상을 다르게 배치하여 전혀 다른 화면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반복’의 조형적인 특성은 <쌓이는 그림들-동물드로잉>시리즈에서도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동물의 모티브가 반복적으로 겹쳐져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러한 겹쳐 그리기는 사실, ‘반복’의 의미를 강조한다. 프로이드에서의 반복의 예처럼, 어린 아이가 장남감을 반복(fort – da)적으로 굴리고 다시 끌어오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부재를 스스로 치료하며, 쌓인 불만을 풀어내는 ‘욕망의 실현’으로 볼 수 있으나, 여기서는 이 외에 다른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형태’가 반복될 때 나타나는 이중성이다. 하나는 반복을 통해 그 형태의 의미가 강조되면서도 동시에, 겹치기라는 성격, 즉 앞의 형태를 부분적으로 덜 분명하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등장한 대상을 부분적으로는 부정하고, 그럼으로써, 원래 의미가 이질화되는 과정을 갖는다. 즉, 형상을 ‘동일화 –이질화’를 같이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 (동일함을 강조하거나, 다름을 강조하는 것)는 그 두 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움직임’(Bascule)으로 파괴된다.

여기서, 꼭 라캉의 같음과 다름 사이에서 '흔들리는 순간 또는 움직임' (moment or mouvment)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순간이며 움직임이 작가의 중요한 작품의 틀로 제시된다. 또한 반복은 작가에게는 ‘기호’의 의미를 제시한다. 우리는 모든 형상이나 사물을 ‘기호’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으며, 모든 경우에 ‘기호학’을 적용하려는 용감함을 가지고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위베르 다미쉬(Hubert Damisch)는 ‘어떤 기호이든 ,그것이 시각적이거나 청각적이든, 분절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기호’라고 지칭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언어를 예로 든다면, ‘아버지’가 ‘아,버,지’ 등으로 구분되거나 분석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며, 시각적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김미로의 작품은 바로 기호의 분절의 기능과 기호소 (형태)를 모아서 형성하는 여러 개의 개, 양, 말 등의 체계를 갖는다고 하겠다. 바로 이 점은 그가 같은 기호소를 복합적으로 다양하게 만듦으로써, 그 위의 계층의 ‘문장’을 형성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단어와 문장을 조형적으로 형성하려는 작가의 태도는 우리 화단에서 보기 드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점에서 작가의 조형세계의 독창성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필자는 여기서 작가가 앞으로도 더 창의적이고 다양한 조형적인 의미구조를 제시하기를 기대한다. (강태성-미술비평)